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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은 챔피언 HIT: 104
작성자 : 정태준 
2013.11.26 (17:13)


찬송 : ‘오 신실하신 주’ 393장(통 447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히브리서 11장 11∼12절

말씀 : 본문에는 하나님의 신실함을 믿은 점에서 챔피언이 된 아브라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어떻게 하나님의 신실함을 믿었을까요.

첫째,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는 챔피언은 상황엔 NO, 말씀엔 YES를 하는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나이가 아주 많았습니다. 임신 능력이 끊어진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실하게 믿음으로 임신하게 되었습니다(11절).
그런데 창세기를 보면 아브라함 부부가 처음부터 이 약속을 믿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창세기 17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너희 부부를 통해 여러 민족과 여러 왕이 나올 것이라고 하니까
아브라함의 반응은 엎드려 웃으면서 100세 된 저와 90세 된 사라가 어떻게 출산하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창 17:17).
 
창세기 18장에 다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의 출생을 알려주십니다.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 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창 18:10) 이 때는 사라가 속으로 웃습니다(창 18:12).
17장에서는 아브라함이, 18장에서는 사라가 믿지 못하고 웃습니다.
 
자신들의 상황, 즉 나이, 생리조건을 볼 때 도저히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과 사라에 대해 히브리서 11장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믿음으로 임신했다(히 11:11). 비록 처음에는 의심이 있었지만 나중에는 믿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봅니다. 마치 잠재력은 많지만
계발되지 않은 선수를 계발하여 올림픽의 금메달리스트로 세우는 명감독들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지금은 부족해도 훈련하고 계발하여 믿음의 챔피언으로 사람들을 세워가는 명감독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 말씀을 믿으십시오.
상황에는 NO, 하나님의 말씀에는 YES! 합시다.

둘째,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는 챔피언은 자기 수준이 아니라 하나님 수준의 삶을 사는 복을 받습니다.
그녀는 자기 능력으로는 아기를 낳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었습니다.
그 결과 히 11:12에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고 돼 있습니다.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사람들에게 찾아가 약속을 주시고,
확신을 주시고, 믿음이 자라나게 하셔서 하늘의 별과 해변의 무수한 모래같이 많은 후손을 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사람들의 생애에는 이런 놀라운 인생이 시작됩니다.

오늘 믿음의 챔피언 사라를 통해 배운 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이란, 상황에는 NO, 하나님의 말씀에는 YES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NO해야 할 것과 YES할 것을 선택하는 시간이 되길 축복합니다.
그렇게 살면 하나님 수준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런 믿음의 주인공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우리 가족이 상황에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을 따라가며,
하나님의 음성을 따라가는 믿음의 챔피언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박성규 목사(부산 부전교회)

 [겨자씨] 플리바게닝

형량제도 중 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이란 것이 있다.
피의자가 자신의 혐의를 일찍 시인하면 가벼운 범죄로 기소하거나 형량을 낮춰준다.
일종의 자백 감형제도다. 이미 여러 선진국에서는 시간과 인력을 절감하는 차원에서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한국도 이 제도를 일부 적용하고 있다. 자신의 죄를 솔직하게 고백하면 용서를 받는 것이다.

플리바게닝의 원조는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죄 많고, 흠집 많은 인간을 향해 일흔 번씩 일곱 번 용서하라고 말씀하신다.
용서의 한계를 정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무한대의 용서를 선언했다.
공소취소나 감형이 아닌 완전한 플리바게닝을 선포한 것이다.
심지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원수까지도 용서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죄를 고백하면 용서는 물론 죄를 기억도 하지 않겠다.”

그것은 용서의 차원을 넘어선 완전한 사면을 의미한다.
세상을 아름답게 지탱하는 힘은 탁월한 리더십이나 엄격한 규율이 아니다.
진정한 평화와 행복은 공동체적 죄의 고백에서 비롯된다. 빈손과 빈손이 마주 잡을 때 용서와 화해의 악수가 성립된다.
손에 무엇을 움켜쥔 상태에서는 화해의 악수가 불가능하다. 하나님은 빈손을 기뻐하신다.
사람은 빈손으로 십자가 앞에 서야 한다. 돈 명예 지위를 움켜쥔 손으로는 악수할 수 없다.
천국의 등불은 회개로 점화된다. 인류의 평화는 용서와 화해로 시작된다.
인간의 구원은 플리바게닝으로부터 시작된다.

오범열 목사(안양 성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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